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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ing & Life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면서... (2016.10.25)

by 채리 2019.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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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2003년 11월이니 제가 결혼한 다음 주에 부모님과 외식하러 나왔을 때입니다.
이때만해도 아버진 정정하셨고... 잘 생기셨던것 같습니다.

간만에 나들이 한컷!

공부를 워낙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버스를 타도, 화장실에 가는 순간에도 항상 손에는 책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중학교 입학할때 갑자기 영어공부좀 해야겠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중학교 졸업할 때 쯤, 아버지께서는 이미 영어 원서들을 읽고 번역하고 계셨습니다. -O-
전 아직도 하얀건 종이요, 까만건 알파벳인데 말이죠.

아버지를 볼때마다 노력앞에는 장사없다는 말이 실감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박사학위까지 받으셨네요.

일본 전공서적들도 번역하여 출판하시기도하고...
저는 영어 하나 공부하기도 벅찬데, 아버지는 일어/영어까지 정말 잘 하시더라구요. ㅠ.ㅠ

어느덧 저는 30년전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고...
당시 아버지만큼의 열정으로 노력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손재주도 좋으셔서, 이것저것 만들고 고치는 걸 좋아하셨고, 덕분에 집에는 없는 공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렸을 적 기억때문에, 저역시 하나둘씩 공구들을 사모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젊었던 시절, 어머니랑 여행을 많이 다니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0여년전 금강산 여행을 떠나셨다가, 금강산에서 차사고를 당하신 이후로는 몸이 불편하셨는지 여행을 자제하시더군요.

1984년부터 중학교 입학선물로 받은 아카데미 갤럭시 버기를 시작으로 히로보 에이리언 미드4라는 버기카까지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30년전 당시 기억으로 28만원정도 주고 구입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같은 반 친구한테 대뜸 돈빌려줘~ 했더니...
그 친구도 아무 말없이 30만원이라는 큰 돈을 빌려주더군요.

지금 30만원도 큰 돈인데, 30년전 30만원은 수백만원의 가치였을 겁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친구가 아침마다 신문배달을 해서 모아놓은 돈이었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도 대체 나를 어떻게 믿고 무슨생각으로 돈을 빌려준 것인지... 지금도 궁금하기만 합니다.

부모님 몰래 친구에게 큰돈을 빌려 RC카를 구입한 사실을 아신 아버지는 친구를 불러 대신 돈을 갚아주셨습니다.
엄청나게 혼날줄 알았는데... 다시는 그러지 마라... 한 말씀만 하시더군요.

생각해보니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딱히 친근하고 자상하게 자식들을 대하거나 하시진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마음껏 하게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국민학교때 방학숙제를 안해놓고 놀기만 하다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은 적은 많았지만요.
예의 없이 행동하거나,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종아리를 참 많이 맞았던 것 같네요.

지금 돌이켜보니, 어렷을 적에 저는 정말 말썽을 많이 피우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기와집 지붕에 올라가 뛰어놀다가 기왓장을 박살내고, 지붕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8살때 멀쩡한 컬러TV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지못하고...
그래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습니다.

공부외에는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
우리들에게도 별다른 애정표현도 없었것 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닐때 자취를 했었는데, 어느날 위경련이 일어나면서 응급병원에 실려가게 되었습니다.
침대에서 눈을 떠보니 제손을 꼭~ 쥐고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게 별 관심도 없어보였던 아버지인데...
아버지는 제가 퇴원할때까지 침대옆에서 몇날며칠을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다가 택시와 충돌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때도...
내가 아파 누워있을때도... 항상 제 옆에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표현을 잘 하지 못하시던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마음속 깊이 저를 사랑하고 계셨던 겁니다.

손주들과 행복했던 시간들도 잠시...

2014년말까지만해도 정정하셨던 아버지는 어느새 많이 쇠약해지셨습니다.
항상 영원히 함께 할 것만 같았던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을 뵙지도 못하고 떠나셨습니다.

오래전 부터 아버지는 개인 홈페이지를 갖고 싶어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간 공부하고, 번역해오시던 책들... 연구 내용들을 올리고 싶어하셨거든요.
진작 홈페이지도 만들어드렸더라면... 너무나도 아쉽고 가슴이 아려옵니다.

제가 첫 월급으로 사드린 촌스러운 색상의 겨울 잠바를...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입고 계셨다고 하시더군요.
그 무더웠던 2015년 7월 여름이었는데...

제가 사드렸던 하얀색 스마트폰과 잠바를 손에 꼭 쥔채...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이것저것 해드리고 싶은 것들이 잔뜩 있는데...
일하느라 바빠서... 오늘은 피곤해서...
갖은 핑계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제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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